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티오코스 3세 (문단 편집) === 최후 === [[파일:터키 셀레우코스 1.jpg|width=800]] 로마에게 패배하고 맺은 아파메아 평화조약 이후의 셀레우코스 왕조 사실, 제국의 주요 수입원은 시리아 북부와 바빌로니아였기 때문에 무거운 배상금이나 소아시아 포기는 그리 큰 손실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제국의 위신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는 점이다. “바실레이오스 메가스”의 권위를 선언한 지 불과 10년만에 참담한 패배를 당했다는 것, 이 때문에 속주들은 곧바로 동요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아르메니아 출신의 장군인 [[아르탁세스 1세]]가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아르메니아가 제국에서 분리되어 나갔다. 또, 파르티아가 공격해 오기도 했다. 제국의 동부 속주는 또다시 난장판이 되었다. 안티오코스 3세는 다시 동방 원정을 떠날 결심을 했다. 시리아와 바빌로니아는 제국에 충성하고 있었으므로, 셀레우키아에서 출발하여 이란 고원의 독립적인 세력들을 토벌하고 이 지역에 다시 제국의 권위를 세우고 싶었다. 그는 다시 원정군을 꾸려 셀레우키아를 출발했다. 처음에는 원정이 순조로웠다. 그러나, 안티오코스 3세가 여기에서 최후를 맞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그는 셀레우키아에서 가까운 [[자그로스 산맥]]의 바알 신전을 약탈하라는 명을 내렸을 때, 갑자기 암살자가 뛰쳐나와 그를 찔렀다. 치명상을 입은 안티오코스 3세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